top of page

​<Colored Lenses,  색안경> 갤러리 밈, 2018.  서문

<색안경>: 프리뷰

 유지원

  1.  

패키지여행은 그저 관광일 뿐 진정한 여행은 아니라고들 입을 모은다. 관광객이 몰리는 맛집이 아니라 현지인 단골이 삼삼오오 모이는 가정식 레스토랑을 찾고, 가이드북에는 나와 있지 않은 스폿을 기어코 발견 해내고 마는 이들은 낯선 곳에 가서도 천연덕스럽게 행동하고 같은 처지의 외국인들, 특히 자국 출신 관광객들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려고 애를 쓴다. 이들을 겨냥하여 현지 느낌이 충만한 여행을 표방하는 업체가 앞다투어 등장했지만 어쩐지 정형화된 유형의 패키지여행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다. 아마 관광버스에 실려 다니다가 전망대에 내려 과격하게 요약된 역사나 지명과 관련된 농담 따위를 듣고 기념촬영을 하는 얄팍한 재미는 대체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패키지여행 특유의 쾌적함은 그것이 경험의 단위를 정갈하게 묶은 상품이라는 특성에 기인한다. 구매를 고민하는 소비자에게 여행사는 해당 상품이 어떠한 경험을 선사할 것인지를 제법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몇 박 며칠, 몇 개의 명소, 별 몇 개를 받은 숙소. 이때 단일한 패키지여행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 즉 여행 경험의 단위는 코스에 포함된 명소의 개수이다. 대개 각 명소 당 하나의 풍경 이미지가 첨부되고, 이 이미지가 거래를 매개한다. 다섯 군데를 들르는 명소 묶음 상품은 다섯 장의 이미지로 대변된다. 이 이미지는 곧 잠재적 고객에게 +5만큼의 만족도를 약속한다. 언제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경험을 이처럼 이미지로 분절하여 상품화하는 데에 성공한 여행사는 현란한 언어를 구사하며 이룰 수 없는 환상을 약속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책임 범위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제스쳐로 제한한다. 저 푸른 초원으로, 아니 그 앞으로 데려다주겠다는 약속. 맑은 하늘과 뭉게구름이 반사되는 투명한 바다 앞으로,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을 피할 야자수 사이로 관광버스를 세워주겠노라고. (우천시 안전상의 이유로 다른 전망대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2.

<뉴질랜드 관광>의 배경에는 다양한 계절의 녹음과 이를 반사하는 호수의 수면이 상쾌하게 펼쳐지고 그 위에 ‘청정자연’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순한 얼굴을 한 양과 물개의 무리가 전경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 <Blue and Pink>에는 채도가 높은 하늘색 바다와 야자수 무더기가 펼쳐진 풍경 일부가 엿보이고, <색채 표본_미국>에서는 그랜드캐니언 혹은 이와 유사한 사막 지형의 기둥이 두드러지게 솟아 있다. 하지만 관광명소, 그러니까 패키지여행에서 주요 거점으로 찍을 법한 장소 자체에 너무 집중하지는 않기로 한다. 패키지여행을 둘러싼 거래, 약속, 그리고 이행의 전 과정에서 이미지가 어떻게 쓰이는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미지가 아무리 반짝여도 아무도 섣불리 속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그 피상성을 걷어내려고 애쓸 이유도, 진정성을 발견하기 위해 파고들 일도 없다. 대신 구체적이고 특수할 수밖에 없는 경험을 보편적으로 소통 가능한 단위로 추상화하는 데에 동원된 이미지가 <색안경>에 등장하는 일련의 작업을 위한 기본 탬플릿으로 활용된다는 점만 알아둔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배경을 이루는 장면이 간편하게 깊이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는 이 화면이 평면이라는 것을 굳이 짚어내려는 듯한, 혹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회화라는 것을 상기하려는 듯한 장치들이 덧붙는다. 이미지가 이미지라는 것, 회화가 회화라는 것을 헷갈릴 사람은 아무도 없으나 재차 확인하듯 쾌적한 호수를 배경으로 구겨진 리본과 프리즘 스티커가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수면에 반사된 겹겹의 면 위로 건조한 붓 자국이 남긴 선과 색면이 두드러진다. 특히 주목하게 되는 요소는 원형의 면들이다. (편의상 이 전시에 한정하여 이 면을 “색안경면”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 색안경면은 망원경이나 야간투시경과 같이 무언가를 볼 수 있도록 해주거나 3D 안경이나 선글라스처럼 특정한 색이나 패턴을 투과시키거나 이 두 작용을 동시에 한다. 가령 <설산>과 <불꽃축제>에서 색안경면은 단조로운 배경 사이로 특정한 이미지를 보도록 한다. 특정 풍경의 표본을 채집하듯이 나란히 놓인 동그란 색안경면들은 각각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실은 본 적 없는,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직접 볼 일 없지만 어쩐지 익숙한 장면들을 소박한 크기로 압축시킨다. 그런가 하면 <색채 표본_미국>의 하단부를 휘감아가는 색색의 지층 위에 있는 네 개의 온전하거나 잘린 색안경면들은 각자의 색을 드러내지만 이를 투과하여 본 풍경의 단면들을 나타내기도 한다. 다른 한편 렌즈나 필터로 작용하기보다 스스로의 존재감을 불투명하게 유지하는 색안경면들도 있다. <색채 표본_반사>에서 밝은 갈색의 땅 사이로 파인 물웅덩이가 반사하는 색안경면들은 저마다의 색과 그러데이션을 지니고 있다. <색채 표본_바다>의 색안경면은 보다 선명하게, 마치 배경과는 별개의 존재인 듯 각자의 패턴을 타협하지 않으며 선명하게 눌려 있다. 나아가 색안경면은 때때로 스스로의 존재를 이처럼 명확하게 드러내기보다 피상적인 배경 이미지 위로 덧붙는 층에 스며들기도 한다. <Blue and Pink>에서는 배경 위에 얹힌 여러 층에 투명한 색안경면들이 여럿 겹쳐져 있는 것처럼 동그란 구멍들이 뚫린 사이로 해변의 장면을 엿볼 수 있고, <Green Lenses>에서도 마찬가지로 노랗고 건조한 층 아래로 푸른 물결이 반사하는 상이 드러난다. 줌 인하고 크롭한 장면을 보게 하거나 배경 풍경을 필터로 작용하거나 스스로의 존재감을 주장하거나 투명해지거나. 이렇게 색안경면은 빛이 산란하면서 만개한 원형의 결정처럼 템플릿을 보충하고 단장한다.

 

3.

이러한 색안경면의 활용은 전시의 제목에서부터 예견된 이미지 생산자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요소일 것이다. ‘색안경,’ 선택적으로, 특정한 방식으로, 임의의 필터를 적용하여 보겠다는 약속 같은 것. 배경화면 위에 불투명하게 덧입혀지거나 반투명한 필터로 작용하는 색안경면은 이러한 약속에 대한 이행이자 이미지의 통제권이 작가에게 있다는 것을 명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작가가 말하길, 전시에 포함될 엽서 사이즈의 수채화 드로잉은 그가 마주한 불특정다수의 이미지로부터 마음에 드는 색채나 패턴을 크롭하고 채집한 것이다. 이 드로잉들은 색안경면과 별개로 자체적인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색안경면을 구성하는 데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특정한 명소의 피상적인 이미지가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 같지만 작가가 임의로 선별한 리듬이나 색의 조합이 개입되면서 하나의 단일한 이미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림 같은 풍경이 캔버스로 옮겨와 탁월한 호환성을 자랑할지라도 <색안경>은 이러한 이미지에 반사면을 부각하고, 스티커를 부착하고, 색안경면을 배치하여 그것을 배경 이미지와는 별개의 이미지가 되도록 한다. 작가는 피상적인 이미지를 샘플링 하는 한편 임의의 선택과 조합을 개입시켜 이미지 생산자로서 자신이 회화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색안경>은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경험하는 양식, 그리고 유토피아보다 상품에 가까운 풍경을 상상하는 방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경험과 재화가 교환되는 거래를 매개하는 매끈한 풍경, 언제든 마음을 먹고 어느 정도의 재화를 지불하면 닿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 <색안경>은 그러한 거리와 풍경이 어떻게 한 사람의 경험으로 조직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bottom of page